히말라야 지상 8000m 굴레의 줄거리: 기
1992년 네팔.세계 최고봉 엘리베스트를 누른 한국의 산악인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이끄는 등산대는 히말라야 산맥 기슭 베이스캠프에서 스폰서의 방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3번째 높이의 칸첸중가 산(해발 8586m)의 해발 6500m 부근에서 한국 대명대 등산팀의 구난 소식이 날아왔고 홍길이는 동료들과 함께 구조에 나섰습니다.
날이 저물자 홍길이는 시신 수거를 하루 앞두고 생존자들과 하산하려 했지만 대학 등산팀의 일원인 박무택(정우)은 아무래도 동료 시신과 함께 돌아가고 싶다며 듣지 않았습니다.무택의 동료인 박종복(김인권)의 팔로우에 홍길도 부러졌고, 홍길은 한발 앞서 동료와 생존자들을 헬리콥터로 하산시키자 무택 등과 함께 시신 수습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악천후를 만나 무택이는 힘이 다하여 쓰러지고 말았습니다.홍길은 무택을 베이스캠프까지 날랐다가 의식을 되찾은 무택에게 너는 다시는 산에 오르지 마라.독단적으로 폭주하는 바보는 등산 자격이 없다며 호통을 친 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1999년, 한국·서울.홍길이의 대는 대규모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다시 칸첸중가산에 도전하려 했습니다.홍길이와 동료들은 한국 산악인 레전드 이동규(조성하) 등과 함께 식당에서 총궐기 집회를 열고 있던 차에 무택이와 종복이가 나타나 대에 합류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처음에는 거절했던 홍길이었지만, 무택과 종복이는 물러서지 않고 홍길 처자 곁으로 몰려왔습니다.할 수 없이 홍길이는 두 사람을 등반대에 포함시켜 강도 높은 훈련과 산의 규칙을 지켜 나갔어요.무택은 같은 대학 산악부 동료인 최수연(정유미)과 사귀었지만 연애보다는 산을 택한 무택은 수연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말았습니다.
히말라야 지상 8000m 굴레의 줄거리:승
2000년 5월홍길이의 대는 드디어 칸첸중가산으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무택이는 거대한 크레바스를 돌파하려 했으나 하마터면 전락할 뻔 했어요.그날 밤 해발 7650m 지점에서 악천후가 닥친 일행은 캠프를 차리고 등정 기회를 노리기로 했지만 무택은 고산병에 걸리고 말았어요.그러나 홍길은 무택의 근성을 점차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홍길은 무택과 다른 동료들을 현지에 남겨두고 셰르파 2명과 함께 정상을 노렸으나 대기하라는 무택은 꼼짝없이 따라오고 말았습니다.내리라고 명령하는 홍길이었지만 무택은 돌아가는 길을 모르죠라며 물러서지 않았고, 홍길은 데려온 게 잘못이라며 후회하면서도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악천후로 셰르파 2명은 부상을 당했지만 홍길과 무택은 지상으로 돌아온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전을 끄고 계속 등정했습니다.홍길은 무택에게 무사히 하산하면 수연과 돌아오도록 약속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후는 기적적으로 회복.극한상태를 극복하고 등정에 성공한 홍길과 무택 사이에는 확실한 우정이 싹트고 있었습니다.2000년 5월 19일의 일이었습니다.무사히 귀환한 무택은 홍길과의 약속을 지켜 수연과 결혼하였고, 그 후 홍길과 무택은 세계 두 번째 K2(해발 8611m), 그리고 2002년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도 제패하였습니다.
히말라야 지상 8000m 굴레의 줄거리: 전
2004년, 한국·대구.홍길이는 6년 전 다친 다리의 상처가 악화돼서 이대로라면 휠체어 생활을 평생 해야만 했습니다.홍길은 아내 선호(유성)의 설득에 힘입어 산악인 은퇴를 결심, 대학의 준교수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홍길은 대를 무택에게 맡기고 네 시대가 왔다며 에베레스트로 떠나는 무택을 내보냈습니다.
얼마 후 홍길이는 저서 사인회 도중 TV뉴스를 통해 무택이가 조난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부하 정재홍(정재홍)과 함께 정상을 노리던 무택은 해발 8750m 지점의 일명 데스존에서 악천후로 눈을 다쳤고, 종복이는 베이스캠프의 설득도 듣지 않고 무택이를 구하려다 조난당했습니다.
"무택과 종복, 재홍은 결국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채 장례식이 치러졌고, 수영은 달려온 홍길에게 당신이 은퇴하지 않았다면 남편은 대장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대학 강단에 선 홍길은 무택과 종복이를 위대한 산악인이라 칭송하고 무택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무택이 있던 자리에는 전배수(전배수) 조명애(라미란) 장철구(이혜영) 등 옛 친구들이 모였어요.
히말라야 지상 8000m 유대의 결말
"홍길을 중심으로 결성된 '휴먼원정대'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 들어갔고, 폭설이 내리는 우기가 오기 전에 무택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습니다"일행은 눈사태와 고산병 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홍길이의 다리 상처도 악화되었습니다.홍길이는 무택이들의 기일까지는 반드시 시신을 회수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부하들의 설득에 따라 일시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베이스캠프에서 홍길이를 기다린 것은 안절부절못하고 따라온 수연이었습니다."홍길은 수연에게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수연은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라고 전에 무택이가 한 말을 하여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히말라야는 악천후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홍길이의 발걸음도 한계에 이르렀지만 홍길은 무택이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며 산행을 결정했습니다.
히말라야에 입성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나 홍길이는 전혀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그러나 식량도 바닥나고 계절풍이 다가오자 홍길이는 마지막 기회로 삼았습니다.홍길은 동료들에게 하산을 종용했지만 홍길, 무택과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동료들은 모두 홍길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데스존"에 도착한 홍길은 비로소 무택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정복이와 재헌이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은 채였어요.무택과 대면한 홍길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오열하며 동료들과 하산을 시작했지만 때마침 화이트아웃이 터지면서 동료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했습니다.수홍은 무선으로 홍길이와 연락을 하고 무택이는 에베레스트에 꼭 있고 싶은가 보다.정복이 오빠나 재헌이와 함께 있고 싶어요.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제발 내려오라고 전했다.
홍길은 수홍에게 내가 제멋대로였다.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끝까지 따라와 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뒤 산중에 무택 정복 재헌의 묘를 만들고 하산 길에 올랐습니다무택은 수헌에게 우리는 언젠가 꼭 만나자.사랑해"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2007년. 홍길은 무택의 뜻을 이어받아 두 사람의 최종 목표인 아시아 16좌 완등을 달성했습니다.홍길이는 무택 정복 재홍이 자신을 지지해 주었다고 깊이 감사했습니다.
이상 영화 '히말라야~지상 8,000미터의 인연'의 줄거리와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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